과학철학? 과학과 철학은 과연 어떤 관계가 있길래?
“우리에게는 과학연구자 전부를 나타내는 호칭이 매우 필요하다. 나로서는 과학자(scientist)라 부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1833년 영국 철학자 휴월(W. Whewell)이 던진 이 한마디는, 지금은 별 생각없이 쓰는 ‘과학자’라는 명칭의 연원을 궁금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19세기에는 ‘과학자’라는 이름 말고 어떤 이름이 쓰였을까요.
1836년 영국왕립연구소에서 열린 한 강연의 멘트는 우리를 더욱 헷갈리게 합니다. “회화는 과학이며 자연법칙을 탐구하는 것으로서 추구되어야 한다. 풍경화란 자연철학의 한 분야이며 회화는 그러한 실험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도 괜찮을 것 같다.”
재미있지요? 엄연히 다른 분야라고 여겨지는 회화와 과학을 동일하다고 여겼다니, 그들과 우리는 뭔가 다르긴 달랐던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과학자’를 과학연구 영역 내부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기 전에는 이처럼 거의 모든 학문이 과학과 연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근대철학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칸트(I. Kant)가 자신의 분석을 식물 키우기에 적용하며 ‘자연철학자’로서 명함을 판 일도 비슷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가 다음과 같이 덧붙인 걸 보니, 아무리 대철학자라도 ‘아무 이유 없이 아름다운’ 꽃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던 것 같네요. “언젠가 뉴턴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풀잎 한 줄기가 생겨나는 것까지 어떠한 의도도 개입되지 않은 자연법칙에 따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표지
과학철학이란 무슨 학문일까?
『과학철학: 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 이 책의 편집을 맡고 원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개념어의 향연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집필을 주관한 동아대 박영태 선생님께 푸념을 섞어 과학철학이 도대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과학철학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과학은 무척 전문적이고 추상적인 학문이잖아요, 그 과학의 특성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다양한데 과연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라고 보시면 되지요.”
이 답변을 곱씹어보면 과학철학이라는 학문이 바로 칸트가 꿈꾸던, 어떤 과학(혹은 철학)의 모습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과학철학은 과학연구가 밝혀내는 법칙을 일반인에게 설명해주는 학문입니다. 그렇다고 독자분들 누군가, 이 책에서 교과서 같은 쉬운 해설을 기대했다면 좀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ㅎㅎ
그 이유는 현대과학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떤 개념을 막 배우자마자 새롭게 발견되고 주창되는 또다른 개념들을 익혀야 하는 식입니다. 그 개념들은 기존의 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들기도 하지요. 불확정성원리로 유명한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가 “인간은 자연이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습니다.
이 책의 목차만 들여다보더라도 그 발달과 전개의 양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양자역학, 실험철학, 기술철학, STS, 생물철학, 심리철학, 의철학, 환경철학 등 생소한 학문의 이름이 연거푸 이어지는데요, 흠, 전공자가 아니라면 바로 기가 죽을 수도 있는 제목들입니다. 근래 ‘통섭’(consilience)라는 개념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학문간에 벌어지는 크로스오버에 익숙했던 독자들이라도 이 제목들 앞에서는 멈칫할 것 같습니다.
과학철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다소 까다로운 목차가 우리를 주저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필자 열아홉명이 4년여에 걸쳐 이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면서 이 학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그 ‘열정’은 돌려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저자들은 일반 독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 즉 근대부터 현대로 과학철학이 넘어오는 과정을 매우 촘촘히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기존의 과학철학 관련서, 예를 들어 카르납(R. Carnap)의 『과학철학입문』(1966, 이하 연도는 원서 출간년도를 말함), 헴펠(C. G. Hempel)의 『과학적 설명의 여러 측면 1·2』(1970), 래디먼(J. Ladyman)의 『과학철학의 이해』(2002) 등이 출간시기 면에서나 그 서술이 흐름 정도만을 개괄했다는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면, 근래에 이렇게 우리말로 철학하는 분들의 연구가 정리되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집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과학사상의 흐름을 개괄하는 작업을 넘어, 과학철학의 현재 쟁점들을 깊이 파고들어가고, 또한 과학철학이 각 분야별로 확장되어간 면모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 저자들은 왜 일반 독자들이 과학철학의 쟁점과 확장이라는 주제를 읽었으면 하고 바랐을까요?
이 또한 제 궁금증의 하나여서 동아대 박영태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선생님의 답변은 (다소 포괄적이긴 하지만) 저자들의 고민을 잘 함축해줍니다.
“과학기술공학이 현대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느니만큼 극단적인 맹목적 과학주의나 반과학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과학기술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른 과학기술관을 고민하게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과학철학을 이끌어온 대표적 학자들. (왼쪽부터 뉴턴, 아인슈타인, 포퍼, 쿤, 카르납.)
<과학철학>,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한국에서 과학연구를 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할 때 종종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학자들이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한편의 우화이지요. 뉴턴은 기존 과학이론을 뛰어넘는 주장을 제시하지만 이를 시기한 학계로부터 왕따를 당하곤 결국 학원강사가 됩니다. 비슷한 이유로 아인슈타인은 헌책방 주인, 에디슨은 전파사 사장, 퀴리 부인은 무직자 등으로 전락했다는 이야기가 뒤따릅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 우화의 뿌리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이 우화가 대변하는 한국 과학계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저자들은 책의 곳곳에서 과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과학이라는 일개 학문을 넘어 정치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과학과 철학으로 얽혀 있는 만큼, 이 책 속의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흥미로운 해석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 이 글을 쓰며 참고한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과학철학>을 읽으면서 옆에 두고 읽으시면 무척 도움을 많이 받으실 것입니다.
『과학으로 생각한다』 이상욱·홍성욱·장대익 지음, 동아시아 2007.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최성일 지음, 한국출판인마케팅연구소 2011.
『철학으로 과학하라』 김시천·최종덕 엮음, 웅진지식하우스 2008.
『철학자들의 식물도감』 장 마르크 드루앵 지음, 알마 2011.
『키워드』 레이먼드 윌리엄스 지음, 민음사 201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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