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경제

한반도경제


미국발 경제위기가 한국을 덮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위기의 터널를 지났다는 입장과 한국정부의 공격적 재정정책에 따른 일시적 경제회복이라는 입장이 팽팽합니다. 이처럼 반복되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기존의 진보개혁진영이 제시해온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나 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복잡한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우직하지만 실사구시의 자세로 연구해온 저자가 있습니다. 저자는 반복되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자본·국가·세계시장 차원에서 발생하는 근대적 문제와 분단극복이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과제 그리고 지역 형성이라는 포스트모던한 과제가 3중으로 얽힌 구조 속에서 찾으며, 한국현실에 적용 가능한 ‘한반도경제’라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제안합니다.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국가, 국가 단위 아래에 있지만 국가를 가로지르고 넘어서서 새롭게 형성되는 지역, 시장과 기업 중간에 존재하는 혼합조직. 즉 급진적 이행이 낳을 여러 위험을 피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적합한, 국가­지역­혼합경제조직이라는 세 바퀴로 가는 한반도경제를 저자는 모색합니다. 이같은 저자의 주장을 엿볼 수 있는 책의 <머리말>과 서울신문에 실린 <내 책을 말한다>를 올립니다.

 머리말

흐르면서 변화하는 사물은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의 현실로부터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를 발견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수입된 개념에 의존하고는 했다. 오래된 것, 수입된 것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변화는 개념과 언어에 조정과 보완을 필요로 하며, 이에 따라 ‘새로움’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회과학 개념은 대개 조선 말 이후 서양에서 중국과 일본을 거쳐 유입되었다. 국가 개념은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는 한반도 민중에게 저항의 대상이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남북한에서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다. 1987년 이후 남한에서는 사정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국가가 공공성을 담지하는 존재로 공고화된 것은 아니다. 계급 개념은 분단과 내전을 거치면서 금기의 언어가 되었으며, 사회의 분화에 따라 그 구성원의 존재와 의식 형태를 잘 나타내기 어려워졌다.
 이에 비하면 민족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도입된 개념이었다. 민족은 일제하에서는 제국에 저항하는 언어였으며, 분단체제하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남북한 양측에서 민족 개념은 분단을 유지하고 국가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민족 개념은 여전히 요긴하지만, 더이상 민족국가의 건설이 우리의 지상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자는 새로운 대안으로 ‘한반도경제’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남북한 각각을 개혁할 뿐 아니라 남북한을 통합하며 세계와 공존하는 새로운 체제를 의미한다. 물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움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경제는 기존의 경로에서 진화한 것이며, 오래된 개념들에 부족하던 요소를 새로이 추가하고 혼합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체제를 구성하는 요소는,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국가, 국가 단위 아래에 있는 지역 그리고 국가를 가로지르고 넘어서서 새로이 만들어내는 지역, 시장과 기업의 중간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조직 등이다. 즉 한반도경제는 국가-지역-사회경제조직이라는 세 바퀴로 굴러가는 세발자전거(tricycle)이다. 한반도경제의 문제의식은 여러 사람들의 고민과 토론에 힘입은 것이다. 1997년 필자와 몇몇 동료들은 우리 사회에서 실행 가능한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남한을 넘어선 외적 조건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 바 있다.
이에 ‘동아시아-한반도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는 2006년에 국가전략 연구모임으로 발전해서 지금의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가 되었다. 연구회에서 떠맡은 이런저런 심부름 역할을 하면서 동학들의 날카로운 식견을 공부의 자료로 삼을 수 있었다. 그간 필자가 주로 공부해온 영역은 중국의 농업과 발전에 관한 문제였다. 연구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한국농업의 구체적 현황을 공부했으나 대안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좌절감을 느끼며 중국을 사례로 한 사회주의 경제와 동아시아 모델에 관한 연구로 공부의 방향을 전환했다.
이 연구로부터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연구에 도전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북한에 대한 공부가 북한을 내생변수(內生變數)로 포함하는 한반도경제를 구상하는 밑바탕이 된 듯하다. 이때 쓴 글들은 주로 이 책의 제3부인 ‘한반도 경제통합과 북한경제’에 들어 있다. 전문가 스타일의 연구에 집중하려던 결심을 수정하게 된 것은 창비의 요청 때문이었다.
창비는 세계체제 차원의 시각과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백낙청(白樂晴) 선생님과 백영서(白永瑞) 선생님은 필자가 도무지 엄두를 내지 못했던 길에 발걸음을 내딛도록 격려해주셨다. 필자는 조금씩 용기를 내어 국민경제, 민족경제, 분단체제 같은 거대담론과 다시 만났다. 이는 한반도경제의 골격을 구축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시도는 주로 제1부인 ‘한반도경제론의 구상과 전략’에 포함되어 있다. 초보 연구자 시절의 소심성에 비하면 현재는 대담성이 꽤 늘어난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경제가 단순한 문제의식 수준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미시적 차원의 정교한 분석과 이론구성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는 결국 한국경제의 새로운 대안 모델을 아래에서부터 찾아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필자에게 비교적 익숙한 분야인 산업과 경제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시작 단계이고 부족한 바도 많지만, 이와 관련해 쓴 글은 제2부인 ‘한국형 경제모델의 모색’에 모았다. 고백하건대, 정교한 설계도를 갖고서 지금까지의 연구를 진행해온 것은 아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보려는 긴장감 속에서 그때그때 글을 써왔다. 따라서 이론화의 정도가 높다고 자신할 수도 없고, 그간의 원고를 모두 털어서 처음부터 새로 써나가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서술의 체계는 한반도경제론-한국경제론-북한경제론의 순서로 잡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1장, 2장, 6장, 10장 등이 그간의 문제의식을 체계화하려는 관심을 가지고 쓴 글이다. 경제학은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하려는 열망이 강하지만, 지역을 연구하는 이들은 이론화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의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 지역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칠판에서만 통하는 이론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책에 일말의 긴장감이 묻어 있다면, 그들 덕이 크다. 끝으로 ‘진보’에 관해 덧붙이고자 한다. ‘진보’는 고정된 목적을 향한 그 무엇이기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는 새로움이고 유연함이며 표변(豹變)이다. 허락된다면, 이 책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2009년 9월 이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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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0 09:33 2009/08/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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