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오규원 「용산에서」
이 만화를 만드는 내내, 저 시가 떠올랐습니다. 생각해보면 꼭 ‘시’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이 다 그렇겠죠. 만화도 마찬가지일 테구요. 그럼에도 “낡은” 저에게는 만화에 대한 어떤 편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화에는 비현실적인 로맨스나 판타지가 있(어야 한)다는.
이 원고를 처음 받아보았을 때의 둔탁한 충격이 기억납니다. 원고를 다 덮고 나니 답답하게 가슴을 조여오던 기분. 제 머리 위에 말풍선이 떠 있었다면 ‘대체 왜?’ ‘어쩌라는 거지?’ 따위의 대사가 들어 있었겠죠.
이 만화에는...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우리의 生”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직도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여성들의 삶이 과장없이 담겨 있습니다.
사별한 남편에 대한 추억을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잇는 독거노인 김발근례
경제사정으로 대학도 포기하고 ‘사모님’에게 뺨 맞아가며 일하는 백화점 판매원 윤정
식모처럼 부리는 시어머니와 우유부단한 남편 사이에서 시들어가는 전업주부 지은
사장과 둘만 일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견디는 편집자 미영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 하지만 월세 내기도 힘겨운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수현
...

그치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가 않으니까요. 저는 만화를 읽으면서 자꾸만 도망가려 하는 제 머리 위로 차가운 물 한바가지가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의 달콤함으로 눈을 가리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달까요.
길어졌는데, 사실 이 만화를 소개하면서 가장 먼저 꺼내고 싶은 얘기는 이 한마디예요. 어쩌지 못해 이 퍽퍽한 삶을 끌고 나가는, 저 같은 여성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만화라는 것. 이 책이 그녀들의 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날카로운 아픔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위로를 들려줄 수 있길 바랍니다.
저도 이 만화를 만들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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