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완벽한 하루> 저자 채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직접 뵈면 참 좋았겠지만 지방에 계신 관계로..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깜악귀님과 메씬저로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나누셨답니다. 일명 '메씬저토크'라고ㅋ 만화의 뒷이야기서부터 만화에 대한 두분의 생각과 고민, 여성만화가로서의 정체성, 앞으로의 포부 등등.. 새벽 두시까지 이어진 두분의 대화, 지금 들려드릴게요.^^

작가 채민

채민

채민▶ 안녕하세요 깜악귀님. 
깜악귀▶ 오랜만이네요 채민 작가님^^  
채민▶ 예 오랜만입니다. 저희가 만난 게 2007년이었죠?
깜악귀▶ 기억도 잘 안 나요ㅎ 제가 『판타스틱』 잡지에서 만화 담당으로 있을 때 뵜었죠 아마. 그때 「행운목」을 보여주시면서 이 책 이야기를 했었고요.
채민▶ 그러게요..  
깜악귀▶ 이미 이때부터 이 만화는 저와 연관이 있었죠. 그런데.. 책은 3년 후에야 나왔어요 ㅎㅎ 그동안 어떤 작업을?  
채민▶ 글쎄.. 그동안 이 책 작업 말고는 특별히 한 게 없는 것 같네요. 지금 실리지는 않았지만 김사인 시인의
깜악귀

깜악귀

시를 넣고 싶어서 작업을 했는데, 좋아하는 시인이라서.. 근데 맘에 안 들어서 버렸어요. 그런 식으로 버린 원고들이 좀 되고.. 그러면서 완성한 원고들이 모였고.. 장편 『나쁜 음식』을 끝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간혹 그 원고를 작업하기도 했지만 많이 하지 못했고요.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깜악귀▶ 결국 냈으니... 이 책이 최초의 완결 단행본이네요.
채민▶ 그러게요.. 영영 안 나올 것마냥 웅크리고 있었죠ㅎ 드디어 나왔습니다.

시와 만화가 나란히 앉았다

깜악귀▶ 「작가의 말」을 보니까 첫 구상을 한 건 2004년이라고 하셨는데.. 왜 하필 시였나요?
채민▶ 기형도 시집을 읽다가 이 시집을 만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 좋아하는 시인이거든요. 그랬는데 그 시집 하나만으로 하는 건 버겁더라구요.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깜악귀 ▶ 그렇죠.
채민▶ 그래서 여러 시들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를 골랐어요. 이번에 작업하면서 시를 선택한 기준이.. 일단 내가 좋아하는 시여야 한다. 두번째는 스토리에 맞아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인 흐름(다른 시들과의 흐름)에 맞아야 한다. 김사인 시를 못 넣은 것도 그래서예요. 백석 시도 넣고 싶었지만 역시 앞의 이유로 그러지 못했고요.
깜악귀▶ 그럼 시를 보면서 이야기를 떠올린 건 아니네요? 그보다는 스토리에 맞는 짝을 찾았다는 거네요.  
채민▶ 이야기가 먼저고 그 다음에 시를 찾았죠. 제가 좋아하는 시 안에서. 그리고 다시 거기서 소스를 얻고..
깜악귀▶ 그리고 시가 이야기 속에 끼어들기도 하고.. 마치 시와 대화를 하는 방식이랄까?  
채민▶ 어떤 경우는 시를 바꾸는 바람에 이야기를 바꾸기도 했어요.
깜악귀▶ 음. 이야기의 선택은 어떤가요? 세상에는 많은 소재가 있는데 자신의 감정이입이나.. 그런 것이 기준이 되나요?  
채민▶ 감정이입만으로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죠. 주인공과 씽크로는 하지만..
깜악귀▶ 그렇다면..?
채민▶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하는 건데 그건 제가 선택하기도 하지만.. 뭐랄까.. 이야기가 퍼뜩.. 떠오른달까..  
깜악귀▶ 음.
채민▶ 확신이 들면 해요.
깜악귀▶ 일테면 전달할 거리가 있겠다든가 이야기가 되겠다든가?  
채민▶ 음.. 설명하기 애매한데 총체적으로 이거.. 라는 확신이 들어요. 내가 할 수 있겠다..
깜악귀▶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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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 그리고 주로 신문기사 보면서 스토리가 많이 떠오르곤 해요. 백화점 직원 이야기도 그렇고 마지막에 자살한 인엽의 경우도 그렇고.. 그리고 인엽이란 사람 이름 말인데요.  
깜악귀 ▶ 네.
채민▶ 우리집 맞은편에 사는 남자 이름이라능~ 그 사람 친구가 새벽마다 골목에서 그 이름을 부르거든요. 돈 꿔달라고.. 하도 이름을 많이 들어서 주인공으로 썼어요.
채민▶ 재미없죠? 썰렁... ㅋ
깜악귀 ▶ 비하인드 스토리네요ㅋ  
채민▶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럼 잠시 해볼까요?  
깜악귀 ▶ 좋죠 ㅎㅎ  
채민▶ 「그 여자는 거기 없었다」에 나오는 시간강사의 경우는 교수인 친구를 만나서 시간강사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생활이 어떻게 되는지.. 특히 타 지역에 가서 얼마 안되는 돈 받고 강의할 경우 어디서 밥을 먹는지 기분이 어떤지 같은.. 여자 주인공은 전에 잠깐 봤던 여자분이 모델인데 혼자 그렇게 근무하는 모습을 보고 뒷이야기를 떠올렸어요. 그 여자분 보기 전에는 그렇게 작은 출판사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비 오는 날」의 복지사도 구청에 근무하는 후배를 불러다가 취재를 했었고.. 저도 예전에 잠시 독거노인 가정방문을 했었는데 김발근례 할머니는 그때 만났던 분이에요.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작품 속에 가져왔어요.    
깜악귀▶ ㅇㅇ 만화의 현실성이나 섬세한 디테일은 그런 취재에서 나온 거네요. 다른 질문을 드리자면, 본래 시는 어느 정도 읽으세요? 방에 시집이 많아요?
채민▶ 엄청 읽는 건 아니구요. 뭐 그렇게 독서가가 아니라서.. 그냥 좋아해요.  
깜악귀▶ ㅇㅇ  
채민▶ 어렸을 때 감성이 그대로 가는 거 같아요. 어렸을 때는 나름 문학소녀였다는..ㅋ  고등학교 때는 시도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쓰고 그랬어요. 최영미 시집은 94년 당시 술 먹으면서 혼자 읽다가 울고 그랬어요. 안주로 시를 읽는 거예요. 음악 틀어놓고 맥주 마시면서 시 읽고.. 그러다가 울기도 하고.. 궁상 끝내주는..ㅋ  
깜악귀▶ 혼자라고 생각하면 그렇긴 하네요 ㅎㅎ  
채민▶ 박정만 시인의 경우는 사실 다른 시를 쓰고 싶었어요. 읽다가 울었던 시가 있거든요. 그분 인생이 그러하기도 했지만 죽어가면서 쓴 시라서.. 여튼 사용하고 싶은 시는 다른 거였는데 만화에 넣기는 조금 어긋나서 「영원의 한쪽」으로 바꿨어요. 이상의 경우도 「지비」라는 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걸 넣고 싶었지만.. 역시 내용과 어긋나서 쓸 수 없었고. 아,.. 진짜 이상은 최고 같아..
깜악귀▶ 저도 좋아하죠 ㅎ  기형도나.. 뭐 별로 싫어하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요 ㅎ
채민▶ 글쵸.
깜악귀▶ 아까 기형도 시집을 읽으면서 만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 책을 보면 뭐랄까.. 시의 만화화? 라고 하긴 어렵고 만화가 시를 끌어들인..
채민▶ 그렇죠.
깜악귀▶ 만화의 일부로 시가 배치된 형태라고 보아야 할 거 같아요. 독자는 만화의 일부로 시를 보게 되고..
채민▶ 가져온 거죠. 만화에 시를..  
깜악귀▶ 이 과정에서 부담감 같은 게 있었나요? 작업에 어려운 점이라거나..  
채민▶ 힘들었어요.. 무슨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는 이 짓 안한다고 결심을 했었어요.  
깜악귀▶ 음.. 시에 위배되지 않게 하는 점에서? 아니면.. 시가 만화 안에 잘 흡수되도록 하는 일이?
채민▶ 시와 위배되지 않아야 하고 또 적합한 시를 고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구요.  
깜악귀▶ 음..  
채민▶ 특히 황지우 시의 경우는 녹여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진짜 힘들었어요.  
깜악귀▶ 황지우의 시로 작업을 한 「행운목」이 가장 도전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읽었을 때는. 가장 야심적(?)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채민▶ 「행운목」은 정말 페이지를 많이 그렸어요. 완성원고는 빙산의 일각이에요.  
깜악귀▶ ㅎㅎ 네. 작가가 힘을 쓴 게 보여요.  
채민▶ 그걸 편집하듯이 다 잘라내고 다시 그리고 다시 합치고... 합친 것도 버전이 여럿 있어요.
깜악귀▶ 그래서인지 이 이야긴 뭐랄까.. 시를 만화화한 것도 아니고 만화가 시를 인용한 것도 아닌.. 시와 만화가 공존하는 공간이 된 것 같아요. 작품마다 정도가 조금씩 다르긴 한데, 어떤 만화는 시를 삼킨(소화하는) 보아구렁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만화는 무리없이 편하게 공존하고. 그런 부분이 흥미있어요.  
채민▶ 스스로는 녹여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냥 시가 만화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이물감이 없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깜악귀▶ 저는 만화를 읽으면서 시와 만화가 나란히 앉았다, 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이게 소화가 안되었다, 라는 뜻은 아니고요. 오히려 시를 만화화하려고 했다면 흥미롭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여성만화가로서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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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악귀▶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나쁜 음식』은 굉장히 여성적으로 보였어요. 채민 작가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고요. 그런데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그보다는 뭐랄까,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해요.
채민▶ 제가 보는 세상의 모습인 셈이죠.
깜악귀▶ 성인여성의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 남성들의 이야기도 많아요.  
채민▶ 재밌는 건 그 남성들의 이야기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는 거예요.
깜악귀▶ ㅇㅇ 그래서인가요. 여기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자들은 뭐랄까.. 다 착해요.  
채민▶ 사실 그 사람들도 여자로 그리고 싶었는데, 여자로 하면 너무 저랑 똑같아서 남자로 바꾼 거예요.
깜악귀▶ 맞아요. 그래서 여전히 이야기의 체험들에는 여성적인 지문이 읽혀요.  
채민▶ 그렇군요. 착해요?  
깜악귀▶ 음. 착하다기보다 「perfect day」 같은 경우, 채민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정확할 것 같은데, 캐릭터는 남자지만 남성으로 한정된 행동을 하지 않아요.
채민▶ 근데 남성은 이렇다, 라는 것도 편견 아닐까요..  
깜악귀▶ 그렇죠. 그러니 딱히 이 캐릭터는 여성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진 않고... 사실 그런 점에서 채민 작가님 만화를 여성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죠ㅎ 여성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도 좀 편견이니까.. 그냥 인간의 이야기겠죠. 굉장히 성인적인..
채민▶ 사실 『나쁜 음식』을 그릴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제대로 된 여성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깜악귀▶ ㅇㅇ  
채민▶ 근데 『그녀의 완벽한 하루』를 그리면서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깜악귀▶ 정리하면 이렇군요. 성인-여성만화가로서의 정체성은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살짝 내려놓은 셈이라는 거.
채민▶ ㅇㅇ  
깜악귀▶ 그 시선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보는 인간의 현실 쪽이 더 강하게 나타났군요.
채민▶ 네. 하지만 굳이 중점을 두지 않았다 해도, 아무래도 제가 여자니까 자연스럽게 여성의 현실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깜악귀▶ ㅇㅇ 사실 의도하지 않는 것이 좋죠. “여성의 이야기를 하겠어!”라고 의도하면 이야기의 힘이 오히려 감쇄하는 거 같아요.
채민▶ 네 그렇죠.  
깜악귀▶ 그러면 캐릭터 중에는 어떤 쪽이 그리기가 더 편하신가요? 남성과 여성 캐릭터 중에. 여성 쪽이 더 쉬울 거 같기도..  
채민▶ 그림으로만 보자면 여자 그리는 게 편해요.
깜악귀▶ 너무 자기 이야기로 들어갈까봐 못 그리는 경우도 있나요?
채민▶ 예컨대.. 「행운목」과 「나비」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은 제 모습과 너무 비슷해요. 특히 「나비」를 그릴 당시는 제 모습이 딱 그 꼴이었는데 그걸 차마 저로 그릴 순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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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악귀▶ ㅇㅇ  
채민▶ 거기 주인공이 만화가잖아요. 그 만화가가 해골이 된 자신을 그리고.. 거기 나온 나비가 다음장인 「행운목」의 주인공에게로 가죠. 그걸 그리면서는 이상이 왜 그런 시를 썼는지 알 거 같은 기분이었달까, 황지우 시인이 당시 무슨 심정으로 이 시집을 냈는지 알 거 같았달까.. 그랬어요. 「행운목」도 주인공 직업을 만화가로 바꿔놓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그래서 작가지망생으로 바꿨어요. 어떤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 힌트를 얻었죠.  
깜악귀▶ 음. 그렇다면... 「나비」와 「행운목」이 가장 감정이입을 많이 한 결과물인가요?  
채민▶ 아무래도 주인공들이 창작자니까 이입이 되었죠..
깜악귀▶ 두 작품이 나비로 연결되는 순간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하지만 이 나비가 흔히들 말하는 희망의 상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기보다..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고리랄까..
채민▶ 그게.. 창작을 한다는 게 뭘까, 라는 자문을 많이 하잖아요. 깜악귀님도 알겠지만..  
깜악귀▶ ㅇㅇ  
채민▶ 희망할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저의 경우.. 의욕은 있지만 실력도 없으면서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생각을 많이 했죠. 삶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건데.. 너무 뻔한데.. 사는 동안 희망할 것.. 무언가에 매달릴 게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깜악귀▶ 그게 나비로 표현되는 거군요, 단순하게 본다면. 날아오는데 둘 다 잡지는 않고  유리창 너머에 있는 식?  
채민▶ 잡히지 않죠..  
깜악귀▶ 그냥 놓아주거나 아니면 보고 있거나. 그런 태도 속에서 서로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나비」의 경우는 그림체도 확 달라져요.  
채민▶ 「나비」는 컷마다 한장씩 그렸어요. 그려서 앉힌 다음에 사이즈를 조정했어요. 마치 영화 편집하듯이 트리밍을 다시 한 거죠.  
깜악귀▶ ㅇㅇ 그래선지 「나비」는 좀 서구만화 같아요.  
채민▶ 아 그래요?  
깜악귀▶ ㅇㅇ 사실 채민 작가님 만화 스타일에 약간 그런 부분이 있는데, 「나비」는 작업방식이 달라선지 그런 느낌이 더 강해요.
채민▶ 서구만화 같다는 건 첨 듣는 이야기예요.  
깜악귀▶「나비」의 경우는 컷 방식이 비슷해요. 서구만화가들이 그림을 한장 한장 따로 그리는 방식을 많이 쓰거든요.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요. 하여튼 「나비」가 중간에 들어가서 호흡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호흡을 색다르게 하니까. 그리고 각 작품이 분절되지 않도록 연결한 것은 좋은 시도인 것 같아요.
 

차마 그리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 희망

채민▶ 첨에는 이야기 전체를 하나로 묶고 싶었어요. 다 연결이 되게..
깜악귀▶ ㅇㅇ  
채민▶ 근데 너무 힘들더라구요.
깜악귀▶ 네, 이해가 가요.  
채민▶ 그래서 두개씩 짝을 지었어요. 모두 아홉편이니까 마지막 한편을 그리지 못한 셈인데..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마지막 이야기는 희망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있었어요. 이야기가 전부 너무 어두워서.. 저 자신도 동의를 했고, 뭔가 밝게 가보려고 했는데.. 근데 안되더라구요. 못했어요 그래서..
깜악귀▶ 음..  
채민▶ 대신 희망이 뭐냐.. 라는 질문만 계속 했어요. 지금 답은,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죽지 않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는 거. 사는 게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깜악귀▶ 사람을 살게 만드는 것이 희망이군요.
채민▶ 그냥 살아내는 거요.  
깜악귀▶ 산다는 행위 그 자체가?  
채민▶ 예. 사는 거 자체가 희망. 지금 내린 결론은 그래요.
깜악귀▶ 그래요. 그게 이번 작품집의 일관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주제의식이랄까..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low class에 닿아 있어요. 상황이나 정신적으로 바닥인데.. 이건 시와의 씽크로, 작가 자신과의 공명 둘 다에 원인이 있겠죠?
채민▶ 그렇죠.
깜악귀▶ 이 만화는 어떻게 보면 시에 있는 ‘바닥’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더 밀고 나간다.. 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low class에 주목하는 만화들은 소위 말해서 ‘민중만화’가 많거든요, 제가 본 한에서는. 하지만 채민 작가님은 그보다는 자기 내면과의 동질성 때문에 그런 소재를 선택하는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유사한 풍경을 찾느라고.  
채민▶ 그런 셈이죠. 아무래도 자신이 아는(공감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죠.
깜악귀▶ 리얼리즘 만화라고 보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소위 한국에서 ‘리얼리즘’이라고 말하는 것들과는 괴리가 있어요. 그래서 시는 이 만화에 잘 어울리는 선택인지도 몰라요. 아무리 리얼리즘적인 시라도 일종의 몽환성이 있고.. 현실을 말해도 감각적일 수밖에 없고.. 감각을 말해도 가난하죠. 결국 시는 좋은 파트너였던 듯. 고생은 하셨지만요~  
채민▶ 그렇네요.. 진짜 고생했어요. 결과물은 시시할지 몰라도, 하는 데는 참 힘들었어요.
깜악귀▶ 뭐랄까. 이 작업을 하면서..  (시시하지 않아요~ ㅎㅎ) ‘이제 좀 알았다’ 싶은 게  있었나요? 앞으론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든가, 이건 하지 말아야지라든가.  
채민▶ 벨소리를 이렇게 하면 좋겠다.. 말통은 이게 좋겠어.. 정도는 있는데 특별히 다른 건 없어요.. 다시는 시 가지고 만화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했네요. 힘들어서..
깜악귀▶ ㅎㅎㅎ   
 

앞으로도 제 만화는 고통받는 쪽의 이야기가 되겠죠

깜악귀▶ 보통 누군가를 볼 때 행복한 면을 보게 되거나 고통받는 면을 보게 되거나 하는 성향이 있는데, 채민 작가님은 후자잖아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채민▶ 고통에 민감하달까.. 제 성장배경도 그렇고, 영화 같은 걸 봐도 어두운 이야기에 끌려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여튼 성향이 좀.. 고통에 민감한 것 같아요.
깜악귀▶ 타인에 대해서요? 자신에 대해서요?
채민▶ 둘 다. 남의 이야기 때문에 가슴이 아파서 잠 못 드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제가 변하지 않는 한, 아마 앞으로도 제 만화는 고통받는 쪽의 이야기가 되겠죠.
깜악귀▶ 확실히 ‘아픈 이야기’라는 것이 지금 채민 작가님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통에 대한 감각이라고 할까요. 시에 나오는 ‘고통’을 작가가 ‘유사체험’하는 힘겨운 시기가 있고, 그것이 다시 작가의 만화 속 인물에 투영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인물들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렇게 보면 시에서 언뜻 보이는 그 ‘바닥’을 만화에서 더 많이 밀고 나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시의 아픔을 현실에서 유사체험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을지도.. 이 책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채민▶ 깜악귀님은 제 만화를 보셨을 때 어떠셨나요?
깜악귀▶ 저는 저 자신의 ‘고통’을 밥솥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아버리는 편인데요. 안에서 밥이 썩어서 곰팡이가 생겨도... 뚜껑만 잘 닫아놓으면 의외로 냄새가 잘 안 나죠. 근데 만화를 보면서는 그 밥솥을 여는 거 같았어요.
채민▶ 알 거 같아요..
깜악귀▶ 고통스러워요. 저도 고통에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닫아놓는 거죠.
채민▶ 그 고통은 작가인 제가 감내해서 만들어내는 거니까 독자들은 안전하게 뚜껑을 닫아도 돼요. 어쩌면 그게 작가의 역할일는지도..  
깜악귀▶ 그렇죠. 보는 사람도 힘들지만, 아무래도 작품을 직접 만드는 작가가 제일 힘들겠죠. 쉽게 뚜껑을 덮을 수도 없고.. 작품과 자신에 대한 모멸감 같은 것도 들 테고.. 그렇게 보면 고통의 경제학(?) 같은 것도 필요할 듯해요.
채민▶ 바보 같은 짓인 거 같기도 해요.  
깜악귀▶ 만화를 그린다는 게 그리 현명한 일은.. 아니죠 ㅎㅎ 사실 뭐, 시나 뭐나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그냥 읽어보세요

깜악귀▶ 누군가에게 책을 직접 준다면, 무슨 말을 하면서 주실 것 같나요? 어떤 책이라고 설명하면서?
채민▶ 음... 제 책이라고 말하고 “그냥 읽어보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설명은 못할 거 같네요.
깜악귀▶ 이 책이 나오고 『나쁜 음식』이 상반기 중에 나오면 일단 복통을 앓고 있던 책들을 다 매듭짓게 됐네요. 축하드립니다. 앞으로의 일정은?
채민▶ 지금 SF만화를 구상하고 있어요. 현실을 우회적으로 까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현정부 들어서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현실을 조망하는 건 진짜 현실에서보다 SF에서 더 잘할 수 있겠더라고요.
깜악귀▶ 그렇긴 하죠 ㅎㅎ 현실은 현실이라는 압박이 강하니까요. 그 자체의 힘이 너무 세죠.
채민▶ 그래서 제목도 지어놓고.. 스토리도 쓰고 있는데, 지금은 머릿속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낼 실력이 안돼서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 일단 올해는 한 6개월 정도 후다닥 작업해서 끝냈을 수 있는 조금 가벼운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에요. 지지부진하지 말고 몰아서. 웹의 스크롤 방식으로 가볼까 싶기도 하고.. 여튼 누가 하자고 해서 하는 작업은 아니니까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깜악귀▶ 음. 그렇군요. 해야 할 이야기는 일단 한 것 같아요. 벌써 새벽 2시니, 일단 이 정도로 마무리를 짓도록 하죠? 언제 만나서 나머지 이야길 하면 좋겠네요. 몸 건강하시고 덜 우울하시길.
채민▶ 오랜만에 반가웠습니다. 깜악귀님도 건강하시고.. 새 음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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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9 09:55 2010/02/1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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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녀의 완벽한 하루」 : 직설적으로 보는 여자, 그리고 남자의 일상 (그리고 기타 보론)

    Tracked from 세상을 보는 검은 눈, Skyjet 2010/03/22 10:04

    기획 의도에는 온갖 훈훈한 이야기를 올려 놓고, 정작 현실과 백만 광년 이상 떨어진 본편을 선보이는 드라마의 '일상'을 보자. 만날 힘들다, 어렵다면서 투덜대는 '중산층' 그들은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 마당과 정원이 딸린 2층 짜리 단독 주택에 살고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의상을 입고 생활한다. 가끔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괜찮다. 끝은 항상 좋게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삶을 보여준다고 해놓고서 미화된 삶을 보여준다. 이런 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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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uy traffic 2011/09/23 17:0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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