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하라, 그러나 사유하라!”
뜬금없으신가요? 지금 저희 편집부에서 한창 작업중에 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책 제목도 심상치가 않죠. 이 제목은 카를 맑스의 걸작 『루이 보나빠르뜨 브뤼메르 18일』(고전 중의 고전이죠! 이것이 바로 마스터피스!)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에서 따온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헤겔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번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처음에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는 희극으로.
-카를 맑스, 『루이 보나빠르뜨 브뤼메르 18일』 서문에서
슬라보예 지젝
그렇다면 저 맨 위의 문장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불복종’도 아니고 “복종하라, 그러나 사유하라”라니?!
칸트는 ‘사유하지 말고 복종하라!’는 보수적 모토에 ‘복종하지 말고 사유하라!’라는 명령이 아니라 ‘복종하라, 그러나 사유하라!’는 명령으로 맞섰다. 우리가 구제금융안 같은 사건들로 옴짝달싹 못하게 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사실상 공갈의 한 형태이므로, 우리의 분노를 행동화(act out)하여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포퓰리즘적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무기력한 행동화에 굴복하는 대신 우리는 격분을 제어하고서, 사유하려는 차가운 결의로 그 격분을 변화시켜야 한다--진정으로 급진적인 방식으로 철저히 사유하며, 그러한 공갈을 가능케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사회인지를 물으려는 결의로.
―슬라보예 지젝,『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중에서
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자서전
물론, 지젝이 여기에서 요구하는 것은 불의한 것에 분노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겠죠. 오히려
6월도 중순이 지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6월은 특히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달입니다.“역사는 기어이 제 갈 길을 가고 만다”는 강만길 선생님의 역사인식을 곰곰이 생각해보게도 됩니다. 인간의 역사, 인간 이성의 역사에는 항상 반동의 시기가 존재하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이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선취해나가는 과정에 속한 것일 뿐이라는 이 무서우리만치 낙관적인 역사인식! 스스로 그것을 증명하며 살아온 역사가의 전언이기에, 역사적 시련 앞에 우리 모두가 서게 될(이미 서 있을)지라도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맑스가 말했던 비극과 희극으로 반복되는 역사, 그리고 지젝이 바라본 21세기의 희비극,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희비극적으로 반복되는 사건들. 그렇다면 지리한 반동과 반복의 폐쇄회로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지젝은 그 방법을 치밀하게 고안하고 있네요. 저는 선선한 초여름밤, 복잡해진 머리를 식힐 겸, 잠시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가야겠습니다. 아니 대체, 지금 축구 안 보고 뭐하는 짓이냐고요? 흐흐.
-창비 인문팀의 열렬한 박지성 팬, 朴英信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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