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서

6월 25일에 펼쳐볼 일기장

내일은 6 · 25 전쟁 60주년이네요.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게 기이한 느낌도 듭니다. 도대체 6 · 25가 언제적 얘기야? 이런 기분이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요즘은 세상을 흉흉한 곳으로 만들려는 세력들이 있어서 6 · 25를 맞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대통령은 전쟁기념관에서 '무력침범시 자위권 발동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하며 북풍몰이를 하고, 북한의 어뢰가 아니라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도 어뢰라는 증거만을 취사선택한 뒤 감사를 실시하고(새 창으로 열기), 서울시에서는 무려 초등학생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공모하고… 분단체제와 못난 전쟁의 현실은 아직도 유효하구나, 어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수가 있을까, 화가 나네요.



역사학자 김성칠은 1950년 6월달의 일기에서 한반도에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을 절절하게 담고 있습니다. 전쟁중에도 학자로서의 태도와 양심이 특히 멋진데요, 6 · 25를 맞아 그 상황이 어땠을지 짐작해보고 싶은 분들께, 생생한 이 일기를 한번 들춰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내가 유독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 적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어제 본 국군과 이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다르다면 그들의 복장이 약간 이색질 뿐, 왜 그 하나만이 우리 편이고 그 하나는 적으로 돌려야 한단 말이냐. 언제부터 그들의 사이에 그렇듯 풀지 못할 원수가 맺히어 총검을 들고 죽음의 마당에서 서로 대하여야 하는 것이냐. 서로 얼싸안고 형이야 아우야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그들이 오늘날 누굴 위하여 무엇 때문에 싸우는 것이냐.   1950년 6월 28일


문간방을 치우다 보니 학생들이 먹다 남겨두고 간 보리쌀이 서너되 자루에 들어 있다. 아내를 불러 보였더니 반색을 하고 좋아한다. 임자는 없지만, 우선 먹어놓고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의논이 일치되었다. 난리를 치르는 중에 우리도 차츰 닦달이 되어가는가 싶다.
전쟁과 윤리(倫理), 이 둘을 연결하여 생각한 학자는 없었을까. 전쟁은 인간을 변질시키는 것임을 이즈음 절실히 느낀다. 따라서 윤리도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1950년 8월 11일


각 기관에서 하느니 심사요, 휴직이요, 파면이다. 악질 부역자가 죽으러 남아 있다면 또 모를 일이로되, 그런 축들은 9 · 28과 함께 이미 지취를 감춘 지 오래다. (…) 그런 줄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이들을 밀어내고야 말리라는 이쪽 측의 공작은 그 진의를 살펴보면 매사에 호락호락하지 아니한 이들을 치워버리고 제 사람을 그 자리에 대신 앉히려는 상사(上司)이거나 만만치 아니한 이들 경쟁자를 몰아냄으로써 안일을 탐(貪)하려는 동료이거나 그 자리를 노리는 밑엣사람들이다. (…) 국가적으로 보아서 훌륭한 중견 국민을 일부러 적측으로 밀어버리려는 어리석디어리석은 짓이건만 민족의 자살이라고도 이름지을 만한 이 망할 놀음을 몇달을 두고 시키는 정치의 빈곤엔 때로 격분을 금치못할 일이다.   1950년 12월 11일



창비 계간지팀 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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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4 13:14 2010/06/2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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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0/06/24 17:36

    어제 텔레비전에서 625를 겪은 어느 할아버지가 하염없이 우는 모습을 봤는데, 전쟁이란....그렇게 서러운 울음 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전쟁 운운하는 요새 인사들이 떠올라 화가 치밀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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